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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그녀와 나의 거리는 그 정도쯤이지 않을까요?
그녀가 사는 세상은 제가 닿을 수 없는 저 하늘, 아니 저 하늘 너머 그 위에 있었습니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단 하루. 반나절만의 추억으로 그녀를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를 잃는 것보다 목숨을 빼앗기는 게 차라리 낫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했던 것입니다.
금위진이라는 작자의 뒤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도주로를 살폈습니다.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하간을 넘어, 하북을 벗어나, 남쪽으로.
그렇게 달려가 장강을 넘는다면, 숨어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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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라 말하며…….> 파워볼게임 장전비는 붓을 내려놓았다. 어디선가 닭이 울어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밤을 밝혀 주던 유등은 어느새 꺼져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웠군.’ 장전비는 힘없이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입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쉬어 보았다.
이화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젓던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장전비는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엔트리파워볼 함께하기를 바랐다는 것을.
말없이 돌아서 대나무 숲을 내려오던 길, 금위진이 앞을 가로막았었다.
금위진은 가볍게 손을 놀려, 장전비의 오른 허벅지 뼈를 부러트렸다.
그 후, 금위진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이리 말했었다.
-운이 좋군. EOS파워볼
그때 알았다.
같이 도주했다면, 대숲을 벗어나기 전에 잡히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금위진의 손에 고통스럽게 죽어 갔겠지.
장전비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도 괴롭다.
바로 어제, 정체 모를 무인 로투스바카라 수십 명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하간 땅에 들어섰다 한다.
아마도 이화영을 모시러 온 이들이리라.

그녀는 이제 떠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보내야 할까?
‘응?’ 로투스홀짝
장전비는 동공이 빛을 발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골목 사이로 십수 명의 사람이 보였다.
같은 복장에 비슷한 검을 착용한 자들.
그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 손으로 신호를 주고받더니 일순간 좌우로 갈라져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립했다.
‘뭐지?’
저 많은 수의 무인들이 이 후미진 골목까지 들어올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장전비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양측으로 도열한 무인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두렵다는 감정을 들게 하는 사람, 금위진. 그리고…….
“이 낭자.” 삐그덕.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화려한 백의 궁장을 입은 이화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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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비는 들어오고 있는 이화영을 바라보았다. 백의 궁장은 너무도 잘 어울렸다.
마치 하늘에서 막 내려온 선녀처럼 아름답다.
내실로 들어온 이화영의 뒤, 그림자처럼 금위진이 서 있었다.
이화영은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뒤로 돌려 차갑게 말했다.
“나가 기다리세요.” 금위진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장전비를 잠시 쏘아보고는 고개를 수그렸다.
삐그덕.
다시 문이 닫힌다.
둘만 남게 된 자리, 이화영은 가면 같은 차가운 얼굴을 벗어던지며 어여쁜 미소를 지었다.
“이틀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장전비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한 차례 끄덕거렸다.
이화영은 역시 더는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오물거렸다.
장전비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떠납니까?” 이화영의 고개가 더욱 내려갔다.
“……네.” “……가는군요.” “네.”

침묵이 머물렀다.
장전비는 입을 우물거렸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인 탓에 보이지 않는 이화영의 입도 역시 우물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화영이 불쑥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러난 이화영의 얼굴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사실 저 반쯤 가출했던 거예요. 좀 답답한 일이 있어서, 바람을 쐬겠다 나왔었어요. 근데, 너무 오래 집을 벗어나 있었더니 집이 그립네요. 하나뿐인 동생도 보고 싶고요. 아! 기웅이 있죠? 기웅이는 제가 데려갈 거예요. 그 애도 원하더라고요.” 이화영은 말을 하기가 힘든지 잠시 호흡을 가누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장 공자님,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웠어요. 장 공자님을 알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어요. 공자님과 함께한 시간, 좋은 추억으로 남길……게요.” 이화영의 음성은 울렁거렸다.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 낼 듯 촉촉했다.
이화영은 그것으로 제 할 말을 다했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전비는 문고리를 붙잡아 가는 이화영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이화영이 휙 고개를 돌렸다. 놀랐는지 이화영의 두 눈은 커다래져 갔다.
장전비는 그런 이화영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만나러 갈게요.” 이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눈가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가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내린다.
“오지 마세요. 와도 만나지 못해요.” “갑니다. 가서 만날 겁니다.” “그러지 마요. 그냥, 없었던 일로 해요.” “새처럼 날고 싶다고 했죠?” 이화영은 얼굴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다.
“그만해요. 흑!” “날게 해 줄게요. 내가! 당신을! 철장 속에서 빼 주겠습니다!” “그만하라니까요! 그만하라고! 흑!” 장전비는 이화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팔로 애처롭게 떨리는 등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이화영은 휙 손을 휘저어 장전비의 팔을 걷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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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뭘 알아! 아무도 못 해! 아무도 나를 구해 주지 못했어!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다 나를…… 나를 두고 떠났어! 철장 속에서 빼내 주겠다고? 당신이? 대체 무슨 수로! 아무도 할 수 없어! 그 누구도!” 장전비는 울부짖는 이화영을 다시 감싸 안았다.
이화영은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그러지 마. 으흑. 제발…… 날 가만 놔둬. 흐흐흑. 기대하게 하지 마.” 장전비는 두 손을 움직여 이화영의 얼굴을 감아올렸다. 그리고 제 눈을 가까이 가져가 마주 보게 했다.
“만나러 갈게요. 그러니 기다려요.” 이화영은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
“할 수 없다니까요.”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기다려도 돼요?” “네. 기다려요. 울지 말고, 웃으면서 기다려요. 꼭 만나러 갈게요. 약속해요.” “믿어도…… 돼요?” 장전비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믿으세요.” 눈물 가득한 이화영의 얼굴에 조금씩 볼우물이 파여 갔다. 그리고 눈을 천천히 감으며 장전비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입과 입이 마주친다.
이 시간이 영원토록 계속되었으면.
톡톡.
문 쪽에서 들린 소리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닫힌 문틈 사이로 금위진의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대공녀님, 이제 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아, 알았어요.” 이화영은 일어섰다. 그리고 문고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열린 문에는 금위진이 냉랭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금위진은 모든 대화를 엿들었음이 분명했다. 금위진은 매서운 눈빛으로 장전비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이 순간 이후, 모습을 보게 되면 죽이겠다고.

하지만 장전비는 금위진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말했다.
“내가 갈 때까지 이 소저를 잘 모시시오.” 금위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장전비는 긴장했다. 그때처럼 주변이 압박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화영 앞에서 차마 그럴 수는 없는지 압박해 오던 기운은 이내 사라져 버렸다.
금위진은 표정을 담담히 고치고 말했다.
“공녀님, 내려가시지요.” “네.”
이화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위진의 옆으로 지나갔다. 몇 걸음 걷던 이화영은 고개를 돌렸다.
장전비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담으려는 듯이.
장전비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이화영은 돌아서 걸어갔다. 그 뒤로 금위진이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다. 두 사람의 신형이 계단 쪽으로 꺾이자, 더 이상 장전비는 이화영을 볼 수 없었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만이 들려왔다.
장전비는 서둘러 창가 쪽으로 달려갔다.

조금 기다리자, 건물에서 나온 이화영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골목의 양측으로 나누어 서 있던 무인들은 이화영의 앞과 뒤로 도열하더니, 이화영의 보보에 맞추어 움직였다.
이화영은 걷는 와중, 고개를 들어 장전비가 서 있는 창문을 돌아보았다.
입 모양이 말한다.
‘기다릴게요.’라고.
장전비는 미소 띤 얼굴로 마구 고개를 끄덕거렸다.
몸을 돌린 이화영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이내 건물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 순간, 장전비는 미소를 지워 버렸다. 그리고 탁자로 다가가 밤새 휘갈겨 썼던 전서를 이어 갔다.
<……저는 그렇게 그녀를 보냈습니다.> 뚝. 뚝.
장전비의 눈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전서에 쓰인 글자가 묽게 번져 감에도 장전비는 제 눈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고자 이를 악 다물며 붓을 휘저을 뿐이었다.
<저는 무력합니다. 너무나 무력합니다.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녀에게 구해 주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호위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주제에, 백기련 속에서 그녀를 구해 내겠다 다짐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 울지 말고 웃으며 기다리라 한 주제에, 정작 저는 울고 있습니다.
저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너무 약해 빠졌습니다.

하기에 강해지고 싶습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녀를 날게 해 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체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아십니까?
아신다면 좀 가르쳐 주십시오.
제발.
제발, 가르쳐 주십시오.> 장전비는 붓을 들어 옆으로 놓고는, 종이를 접어 전서 통에 넣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귀아의 발에 전서 통을 매달았다.
귀아는 평소처럼 박차고 날아올라, 창문 너머로 사라졌다.
그제야 장전비는 주저앉았다.
그리고 낮게 흐느꼈다.
“으으으윽. 으욱. 으으으윽. 으으으으윽!” 참아 보려 부단히 애를 써 보지만, 비틀린 입술은 도무지 다물려 지지 않았다.
고작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여…….
그녀를 그리 보내야 하는 이 현실이 가슴 아파서…….

흐느낌은 오래도록 이어져 간다.
해가 중천에 올라 서산 너머로 기울 때까지.
파드드득.
날갯짓 소리에 장전비는 퉁퉁 부은 눈을 들어 올렸다. 귀아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저문 모양이었다.
장전비는 유령처럼 스르르 일어나 귀아에게 다가갔다. 전서 통을 열어 종이를 꺼내 본다.
<임생 : 자식! 힘내라! 내가 있잖아!
화생 : 울고 말았습니다. 어떤 글을 남겨야 위로가 될지 모르겠네요. 하늘은 야속하지만은 않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의 연이 다하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설생 : 여자 때문에 우냐? 문 열고 나가 봐. 세상의 반이 여자야. 어깨 딱 펴고, 잊어버려. 너한테 맞는 좋은 사람이 있을 거야.
급생 :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만나러 갈 거야? 언제 만나러 갈 거야? 구경 가도 돼? 응?
유생 : 장부에게 여인은 의복과 같다 하였소. 오늘은 슬프고 괴롭겠지만,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면 또 다를 것이오. 시간이 해결해 줄 것 같소이다.
철생 : 백기련? 신창이가의 대공녀? 크게도 잡았구나. 흥미진진하기는 했었다. 차라리 천산성모(天山聖母)라 하지 그랬나?
악생 : 뭐, 흥미진진하구먼. 자, 이다음은 뭐야? 나한테 괜찮은 소재가 있는데, 이런 건 어때?
화생 : 이봐요, 윗분들! 지금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임생 : 이런 막돼먹은 놈들! 도끼 맛 좀 볼 터냐!

설생 : 역시나 도끼를 썼네. 잘 어울리는구먼.
임생 : 넌 뭐야!
설생 : 난 나지 뭐. 왜 나도 맛보여 주게?
임생 : 이 자식을 그냥! 너 어디 사냐?
설생 : 알아서 뭐 하게?
임생 : 이게 진짜!
철생 : 또 입으로만 싸우는군. 손발을 두었다 뭐 하려는 거지?> 장전비는 슬쩍 웃었다.
그 밑으로는 또 둘로 갈라져 다투고 있었다.
네가 와라, 내가 간다 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처럼 치졸하다.
이들의 전서를 읽으니 조금은 낫다 싶었다.
그래.
내 일은 나만의 일이다.
내가 헤쳐 나가야 한다.
울지 말자, 장전비.
강해져야 한다.
그녀를 위해. 그녀와 나, 우리를 위해!
전서를 덮으려던 장전비는 뭔가를 스쳐 보고 다시 종이를 폈다. 제일 마지막에 쓰인 한 줄이 낯설다 싶었다.
지금껏 반응을 보이지 않던 마지막 사람이다.
지금껏 과묵하기만 하던 사람답게 단 몇 글자만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몇 글자는 장전비의 두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장전비는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무공, 가르쳐 줄까?” 천라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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